그냥 늦된 아이라구요?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짱이는 작년 12월로 만 3세가 되었다. 또래 아이들이 조잘조잘 말을 해대며 친구를 만들 때 짱이는 손가락으로 원하는 걸 가리키거나 가끔 단어에 가까운 소리를 낼뿐 아직 제대로 말을 못한다. 종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지내지만 엄마는 짱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선생님은 그저 말이 느릴 뿐 아이들과 잘 지낸다고 매번 엄마의 걱정을 잠재워주었다.

 

짱이의 엄마는 산후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고 있는 처지였고,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고려하고 있는 30대 전업주부이다. 부부 상담을 원해서 내원하였지만 남편은 돈이 아깝다거나 시간이 없다거나 등의 이유로 한두 번 참여한 뒤 아예 나타나질 않았다. 두 사람은 술집에서 만났는데 짱이 엄마에게 한눈에 반한 남편이 거의 1여년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다 결혼에 이르렀다. 매너있고, 다정하고, 반듯한 직업 있고, 나름 잘생긴 남자의 끈질긴 구혼에 짱이 엄마는 낯선 도시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짱이 엄마는 결혼 후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고, 즐겨하던 온라인 게임도 끊지 못했고, 다양한 SNS 활동도 줄이지 못했다. 남편은 어느 것도 말리지 못하거나 안했다. 자신의 생활 방식도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짱이가 태어나기 전에 둘은 늘 돈 문제로 다퉜다. 크게 소비를 하는 것 같지 않은데도 늘 돈이 부족하고 빚이 늘어만 가자 짱이 엄마는 불안과 우울이 심해졌다. 사실 돈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둘은 소리 지르고, 던지고 욕하며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 서로가 될 지경이 되어 헤어지자 말자 할 즈음 짱이가 생겼다.

 

 

임신 기간 동안, 부유한 시부모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아파트를 장만해주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휴전을 했던 그들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짱이가 태어난 기쁨도 잠시, 준비되지 않은 부모 노릇에 그들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둘 중 어느 누구도 희생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이전의 생활 습관을 바꿀 의향도 없었다. 그렇게 다투는 사이, 짱이는 누구와도 제대로 소통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시간이 흘러 짱이는 어린이집에 위탁되었고, 늘 시끄럽고 불안한 집보다는 어린이집에서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적어도 선생님이 보기에는 그냥 말이 좀 늦은 아이일 뿐이었다.

 

짱이가 3세 즈음에는 다른 애 보다 조금 늦된 아이일 뿐일거라고 생각하며 마음 깊은 곳으로 미뤄두었다. 자기 의사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자 짱이는 떼쓰기와 소리 지르기로 표현 강도를 높여갔다.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는 엄마라는 단어조차 어눌하게 가끔 뱉을 뿐이었다. 짱이 엄마의 상담을 몇 회기 진행하였을 때, 상담사는 엄마보다 아이가 더 걱정되었다. 우울증이 어느 정도 차도를 보이자 짱이 엄마는 돈 걱정하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짱이의 심리 평가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짱이의 동작성 지능은 또래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언어성 지능이 유의미하게 발달이 지연된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정서적으로 몹시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 것이 관찰되었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짱이는 언어 치료를 받고 있다.

 

아무리 준비가 안 된 부모도 아이 문제에서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짱이가 소리 지르는 것으로 밖에는 자기를 표현하지 못한다는 결과 보고서를 읽고는 남편도 마음이 달라졌다. 아이의 눈을 보며 얘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고개를 숙이던 남편의 표정이 잊혀 지지 않는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자기는 열심히 밖에서 돈을 잘 벌어야 하고, 그러면 가장의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남편. 부부 상담 장면에서, 짱이 아빠는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기느라 비난만 한 것을 사과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한 번도 자기를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아 견딜 수 없는 공허한 마음에 남편이 사랑하는 돈을 물 쓰듯 했노라고 고백한 아내.

 

아빠 우유 주떼요.”라는 짱이의 말에 눈물이 날 뻔 했다는 남편과 수고한 남편을 위해 정성껏 저녁상을 차린다는 짱이 엄마의 고군분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싸움을 멈추거나 PC 게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생활 습관이 확연하게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의논하고 양보하고 때론 희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내 아이의 발달이 늦다고 그게 다 부모의 책임은 아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원인만 따질 때가 아니다. 원인을 따지는 행위는 그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있을 때 더욱 중요해진다. 부부 상담을 통해 아이의 문제를 보게 되고, 부부 관계도 치열하게 바꿔보는 것은 어떠신지.

 


 

김지애 소장
대구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부속 WIN 학습 클리닉센터 소장이며, 실험 및 인지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장에서 심리 상담을 하고 있으며, 글 이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인지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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