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급진적 록뮤직이 범람하던 70년대. 그 회오리 속에서 젊은이들의 반항, 세대간의 갈등, 사랑과 낭만의 순수한 정서를 잡아챈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America’로 시작한다. 한때 록 매거진 《롤링스톤》의 프리랜서 기고자로 활동한 감독은 몇몇의 록 그룹을 따라다니며 경험한 음악의 세계와 풋사랑을 영화에 반영했다. 저항적 소재를 애교 넘치게 묘사한 영화는, 나에게 죽을 때 무덤에 가지고 갈 영화 10편을 꼽으라면 기꺼이 거론할 작품이기도 하다. 21세기 벽두에 우리 앞에 던져 진 성장영화를 함께 보자.

 

 

<올모스트 페이머스>에는 감독과 배우의 혼연일체, 유쾌한 하모니라는 표현이 인장처럼 따라붙는다. 그만큼 연출과 연기의 조화가 탁월하다. 감독의 욕심만큼 배우의 재능은 십분 발휘되며 귀에 착착 감기는 70년대 음악들은 낭만적 정취를 끊임없이 견인한다. 예컨대 록 밴드와 불가분의 관계인 마약과 섹스를 포함시키지만, 마약과 섹스를 하는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시종일관 해맑은 주인공을 잡는 크로우의 연출은 쾌활함을 지향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제 갓 무명을 벗은, ‘거의 유명해진’ 록 밴드 스틸워터를 취재하는 신입 기자 윌리엄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맡은 강인하고 신념에 찬 윌리엄의 엄마이다.

 

윌리엄의 엄마는 대학교수로 록뮤직과 70년대 청년문화에 반감 많은 인물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마저 ‘마약과 혼음’을 부추긴다 여길 정도로 고루하고 보수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합리적 근거로 신념을 고수하는 그녀임에도 아이들은 엄마의 언어를 존중하고 존경한다. 원칙 속에서 유연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금기와 계몽만 앞세우는 부모는 자식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법. 남자친구와 새 삶을 꾸리려 집 떠나는 딸에게 “내가 뭘 어쩌겠니, 이미 열여덟 살인데”라고 말할 정도로, 현실 앞에서 관용의 미덕을 발휘하는 탄력적 사고를 갖추었다.

 

70년대 청년 하위문화 확산이 히피와 프리섹스주의자로부터 촉발되었다면 그것의 파급력을 매개한 것은 록뮤직과 마약이었다. 영화는 술도, 담배도, 섹스도 아닌 ‘마약’을 강조함으로써 허무와 고독의 해방구로 마약을 택하던 그 시절 미국사회를 소환한다. 그녀가 밴드투어 취재를 떠난 아들에게 지겹도록 하는 말은 “마약은 안 돼”이다. 단순한 경고와 명령이 아니라 수시로 확인하고 환기시킨다. 고작 열다섯 살의 윌리엄. 자유와 방종을 혼동하고 사랑과 욕정을 구분하기 힘든 나이다. 모든 것이 신비롭고 신기할 때다. 하물며 록 스타와 아리따운 여성 팬을 동반한 여행이라니! 그러나 모두가 마약에 취해한 환경 속에서도 윌리엄만큼은 엄마와의 약속을 지킨다. 부모자식 간의 신뢰는 어떻게 구축되는 가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이다.

 

세상에 내 자식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사고를 가진 부모가 흔하다. 이런 부모는 대게 자기 아이의 문제에 지나치게 감정적이며 즉흥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내 아이는 다를 거라는 믿음과 나만큼은 좋은 부모가 없다는 오만이 불러온 결과다. 반면 윌리엄의 엄마는 감정을 절제할 줄 안다. 그녀의 무기는 합리적 이성과 당대의 반항적 정서마저 무장 해제시키는 모성이다.

 

밴드의 리더 러셀 해먼드와의 통화에서 그녀의 힘은 정점에 이른다. “그 앤 똑똑하고 착한 15살 아이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죠. 나는 앞치마만 두른 그렇고 그런 엄마가 아니에요... 그 앨 절대로 그런 곳에 보내지 말았어야하는데 (중략) 이제 가서 잘 해봐요.” 그리고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용감하여라, 엄청난 힘이 널 도울 것이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아직 늦지 않았으며, 내 아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달라는 진심어린 부탁과 “통화하게 돼서 좋았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부모로서의 그녀의 태도는 상대를 쥐락펴락하면서도 예의에서 벗어남이 없다. 모성의 애틋함과 기성세대의 강인함과 지성인다운 지혜가 올바른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지점, 진심어린 울림이란 이런 것이다.

 

 

 

유럽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일로, 유태교 집안과 가톨릭 집안의 남녀가 결혼하려면 부모는 완강하게 반대한다.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몰래 결혼식으로 올린 후 집으로 돌아오고, 이때 양가 부모는 환영하며 부부의 앞길을 축복한다. 원칙은 지켜져야 하지만 현실이 되면 관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 가보자. 딸이 집을 떠나자 엄마는 아들에게 말한다. “다시 돌아올 거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록 음악에 관한 이야기고, 70년대의 사회적 풍경과 허무의 정조가 짙게 밴 영화이지만 윌리엄의 엄마를 통해 우리시대 부모의 초상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지막하고 부드러우며 힘 있는 목소리는 이렇다. ‘당신은 정말로 당신의 아이를 믿습니까? 그렇다면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허락하세요. 대신 돌아오면 언제라도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함께 선사하세요.’ 떠나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믿음 말이다. 가족이 기다릴 거란 믿음을 품고 떠난 아이는 반드시 돌아오고, 또 훌쩍 커있을 것인 즉.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