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란다. 영롱하고 의젓하게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영화가 시작되고 오래지않아 “돼지저금통이 가득차면 돌아올 거”라는 말을 어린 자매에게 남긴 채 엄마는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졸지에 고모에게 맡겨진 진과 빈. 하릴없이 하루를 소일하던 아이들은 엄마의 귀환을 소망하면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저금통을 채워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곳으로의 이동. 저금통은 채워질 수 있을까, 엄마는 돌아올까?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자매의 엄마가 아빠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지지도 않으리란 것을, 그리하여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아차렸을 것이다. 고모 집에 온 첫날 자매는 돌무더기 위에 죽은 나뭇가지를 꽂아놓음으로써 아버지를 형상화하지만 그것은 며칠 못가 다른 남자아이에 의해 훼손되는데, 앙상한 나뭇가지는 아이들이 기대고 싶은 아빠의 다른 모습인 동시에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척박한 현실에의 메타포이다. 이를테면 ‘거짓 희망을 설파하는 것은 절망을 안겨주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비정함과 절망으로만 가득 차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김소영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나무없는 산>의 교실에 앉은 진의 클로즈업으로 시작하는 영화답게 카메라는 집요하리만치 아이들의 눈과 얼굴에 몰두한다. 그것은 마치 대상과 카메라의 거리를 자로 잰 것처럼 일정거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근래 이 정도로 정밀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미장센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게다가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에도 불편하기는커녕 아이의 눈과 마주쳐 화답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채워놓은 그 무엇. 말하자면 감독은 관객을 아이들의 응시의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진과 빈의 응시가 감정의 파동을 불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두 아이의 일상이 가슴 아리게 다가옴에도 그나마 절망과 체념 사이에 놓인 구름다리 를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지방의 소읍으로 내몰렸던 아이들은 조금 더 깊숙한 산골로 이동하게 된다. 단조로워진 풍경에 소리는 줄어든 반면 햇살과 신록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풍성한데, 외할머니의 공간에 들어오면서 아이들은 비로소 활력을 얻기 시작한다. <나무없는 산>이 기적처럼 소생하는 순간이다. 엄마와 고모와 할머니 모두가 살가운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녀들에게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공통점은 “이리 오너라.”는 말을 자매에게 건넨다는 사실이다. 아빠는 아이들을 외지로 밀어내버렸고 할아버지가 손사래를 치면서 양육을 거부한 반면 여성들은 거듭 “이리 오너라”를 반복하면서 자매를 품안으로 불러들인다는 것. 그러므로 <나무없는 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가부장제 사회의 그늘이 짐 지워버린 여성의 지난한 삶이 아니라, 그것들을 다시 품안으로 거둬들여 힘찬 생명력을 불어넣는 할머니의 공간이다(진과 빈이 할머니에게 간 이후로 잿빛 하늘도 구름사이로 햇빛이 오락가락하던 하늘도 사라진다). 


오줌을 지린 새벽, 아이를 안심시키는 엄마의 목소리가 동생 대신 소금을 얻으러 가겠다던 진의 목소리로 이동하더니 아이들을 불가로 이끄는 할머니의 자애로운 목소리까지 이어질 때, 나는 기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고 말았다. 진과 빈, 엄마와 고모와 외할머니로 이어지는 여성들의 연결고리가 가부장제 친족주의를 가뿐이 뛰어넘는 한편 남성의 영역 외부에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낸 것은 <나무없는 산>이 이룬 또 하나의 성취라 하겠다. 자연과 여성의 힘은 이토록 위대하며 아이들의 생명력은 숭고하다.


엄마가 올 날을 기다리며 동전을 넣었던 돼지저금통이 낯선 곳으로의 이주를 겪은 아이들이 선택한 타협의 산물이자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안전장치였다고 해도, 할머니의 공간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진이 돼지저금통을 내미는 행위 앞에, 함부로 ‘희망’이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말자. 그것은 단어로 포섭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지부동 저체온을 유지하던 영화에 쏟아진 불같은 뜨거움이요, 가슴 먹먹해지는 숭고함인 동시에 감독이 일정부분 세상과 화해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니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을 아이의 말없는 응시를 통해 묘사하다니 대체 감독은 얼마나 이 악물고 영화를 찍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연기해내는 아이들을 단련시키면서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켜야했을지 짐작된다. “산 위로 올라가고 싶어, 산 뒤로 내려오고 싶어…”를 부르는 진과 빈의 활기찬 모습은 그래서 고맙다. 어른들의 간섭 없이도 또한 가부장의 울타리가 없을지라도 아이들은 이처럼 영롱하고 의젓하게 자란다. 비록 나무 없는 산에서도 말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