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영화가 시작되면 토론토에 유학 중인 딸이 엄마와의 통화에서 울분을 터뜨린다. 새로 지어질 교회 진입로를 만들려면 땅주인인 딸의 사용승낙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전화 한 통 없던 엄마는 국제전화를 걸었던 것. 아빠가 돌아가신 후 물려준 땅을 교회에 기부해버린 엄마, 시작부터 모녀관계는 단단히 묶인 매듭처럼 풀릴 길 없어 보인다.

“엄마, 시장 갔을 때 비싸다고 멸치 안 산 거 기억나?”

딸은 유학길에 오르기 전날, 새언니가 멸치조림 밑반찬을 해주겠다고 하여 엄마와 장에 간다. 엄마는 멸치가 비싸다는 이유로 사지 않았다. 마음에 상처가 남았고 그것이 터진 것. 딸 먹을 멸치 사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돈을 쥐고 살았던 엄마는 교회라면 열일 마다 않는다. 땅도 주고 시간도 열정도 인생 모든 것을 준 듯하다. 정호현 감독의 <엄마를 찾아서>는 심상치 않은 시작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주는 다큐멘터리다.


극중 화자이자 주인공이며 딸인 감독 자신은 엄마가 왜 이토록 교회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영화 초반은 엄마를 향한 딸의 원망과 분노와 항의로 가득하다.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연속이고, 엄마는 무언가에 씌운 사람이 분명하다. 여기에 고모와 친척을 등장시키며 “고모 같은 엄마 밑에서 자라고 싶었다”는 대목에 이르면 엄마에 대한 감독의 반감과 응어리진 마음은 극대화된다. 딸의 첫 생리도 나 몰라라했던 엄마로 인해 아빠에게 거짓말로 돈을 받아내 여자약사가 있는 약국을 찾아 온 시내를 뒤진 기억이 있다. 쉽게 풀릴 매듭이 아니고 치유될 상처가 아니다.


극영화로 치면 캐릭터소개가 끝나고 본격적인 사건추리가 시작되어야할 터. 광신도처럼 보이던 엄마가 속내를 드러내는 건 시부모제사를 앞둔 시점이다. 열 살 이후로 엄마 없이 자란 엄마, 아이를 낳고도 쉬지 못해 몸이 망가지고 밤 11시 이전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된 밭일과 시집살이에 만신창이가 된 엄마,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두 번이나 아이를 업고 교회로 도망쳤던 엄마였다. 새로운 사실을 마주한 감독의 카메라는 엄마에서 아버지의 친족으로 이동한다.


엄마는 말하지 못하고 내색하지 못한 채 혼자 가슴앓이하며 살아온 시간을 반추한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유일하게 받아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준 곳이 교회였다고 말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47분쯤 지났을 때, 그러니까 전체 러닝타임의 8할이 지났을 무렵 감독은 처음으로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엄마와 식탁에 마주앉아 밥을 먹고 대화를 한다(이전까지는 엄마와 딸과 친척 각자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원망과 푸념이 전부였다.). 마음이 열리고 매듭의 올이 느슨해진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가는 소심한 원망으로 시작된 영화는 엄마가 우리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한다. 처음엔 엄마를 교회로부터 되돌려 받고 싶었을 것이고, 엄마의 자리로 돌아오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는 관심 밖이었다는 것. 뒤늦게 깨달은 건 그것이었다. 어려서는 몰랐고 커서는 애써 외면했던 내 엄마의, 한 여인의 삶이 잔인한 격투 끝에 자백처럼 풀어헤쳐질 때(…).


영화의 마지막 다시 토론토로 떠나는 딸을 배웅 나온 엄마는 마침내 눈물을 보인다. 딸도 눈물을 참을 수 없어 자리를 피한다. 말이 필요 없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다. 엄마는 딸은 그리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원초적 질문의 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감독의 담담한 읊조림이다.

“엄마는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가고 있는 엄마를 붙잡아 나는 내게 필요한 엄마로 묶어두려 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여전히 낯설지만 나는 내가 갖고 싶은 엄마, 존재하지 않은 엄마를 찾아 더 이상 헤매지 않을 것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