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지 않는 모성, 엄마도 사람이다

작성자 : 맘스코리아 (moms@momskorea.com)

l


아는 후배는 출산일이 코앞인데도 모성이 생기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내 아이를 만날 가슴 벅찬 일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많은 이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고 걱정스러워했지만,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성은 정말로 자연발생적인 것일까. 그러니까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당연히 생성되고 고양되며 누구나에게 안착하는 걸까. 출산 공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을 표현할 수 없는 현실과는 달리 많은 이들은 이 같은 문제에 봉착해있는 걸로 알려진다.


     린 램지 감독의 <케빈에 대하여>는 ‘보편적이지 않은 모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성은 숭고하고 무한 희생하는 헌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못견뎌하고, 반항적 행동에 맞받아치며 냉소적 모성이다. 엄마 에바는 아이로 인해 자신의 삶이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뭐 그래? 라고 몰아세우지 말자. 엄마도 사람이다.

“네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더 행복했어”

     에바는 케빈이 부담스럽다. 부담은 귀찮음과 무관심을 자양분으로 삼아 이내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엄마의 행동에 담긴 생각을 아이가 모를 리 없다. 미니 양궁장이 달린 저택에 사는 가족에 감도는 건조하고 냉랭한 기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고 자제해온 모든 악몽이 이 저택 안에 내재해있다. 크리스마스와 막내 출산과 생일 등의 시퀀스를 거듭 등장시키는 건 이런 까닭이다. 행복하고 즐거운 시절의 표상들 이면에 상존하는 불신과 불안과 부재하는 가족애, 이들 가족 뿐 아닌 위기의 처한 현대 가정의 표상이다.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움직일 때 부부는 엑스트라로 전락한다. 가족드라마를 그리고 있지만 에바와 남편의 관계가 서브텍스트조차 점유하지 못하는 건 가정에서 아이가 차지하는 비중 때문일 것이다.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대궐 같은 집에서 엄마와 아들은 각자 고립을 선택한다.  


     진짜 문제는 엄마가 아이에게 질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아끼는 방을 망쳐도, 고의로 용변을 봐도 또 어떤 사고를 쳐도 묻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를 궁금해 하는 대신 ‘무슨 목적’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목적의 대상을 자신으로 한정하는 순간 불신은 극대화된다. 간극이 좁혀질 리 없다. 열여섯 살 생일을 앞둔 아이는 기어이 끔직한 사건을 저지르고, 곧 열여덟 살이 되어 성인교도소로 가야하는 아이는 겁에 질려있다. 영화의 마지막, 케빈을 면회 간 엄마는 처음으로 묻는다, “왜 그랬니?”라고.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이 엄마의 육아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누구나 처음일 땐 서툴고 두렵기 마련이다. 케빈이 아기였던 시절 모든 게 처음이었듯 에바에게 엄마의 삶 또한 처음이었다. 출산과 육아는 어떤 것보다 경이로운 순간이면서 낯설고 무섭다. 태교를 통해 아이와 교감하며 어려움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육아 자체가 부담이고 짐인 사람도 있다. 내색하지 않을 따름이다. 세상에나!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소양이 있는지 없는지를 출산하지 않고 육아에 돌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말한다. 모성은,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마땅히 그래야한다는 사회규범과 관습과 도덕과 한 인간으로의 삶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하는 모성의 시대다. 악몽 같은 현실과 판타지 같은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구성하며 감독은 묻는다. 당신의 모성은 안전하냐고, 혹은 우리는 모성 앞에 너무 많은 짐을 얹은 건 아니냐고.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