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목욕탕> 엄마는 씩씩했네

작성자 : 맘스코리아 (moms@momskorea.co.kr)

「삶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 것은 어머니와 천재들이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

 

내 어머니는 종종 여고 동창생들과 여행을 다니셨다. 전날 밤이면 가족이 먹을 반찬과 국과 찌개를 만드느라 여념 없었는데, 정작 당신 짐 가방은 아침에서야 허겁지겁 싸기 일쑤였다. 단 며칠 집을 비우는데도 이토록 가족 걱정 가득한 게 엄마의 마음이거늘, 영영 이별을 앞둔 상황이라면 그 심정이 오죽할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남편과 학교에서 집단따돌림 받는 딸을 가족으로 둔 평범한 주부 후타바에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이 내려진다. 슬퍼하고 절망할 겨를도 없다. 남은 생을 정리하고, 가족의 뒷일을 준비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다. 남편에게 목욕탕을 재개장하도록 만들고, 딸 아즈미가 홀로 서기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하며 혼외자인 막내 아유코까지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한다. 나카노 료타 감독의 <행복 목욕탕>은 엄마이자 아내이며 누군가의 딸인 후타바의 남은 시간을 담담하게 동행한다.

 

 

2011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인들 삶에 많은 변화를 안겨주었다. 이유 없이 찾아온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는 일상을 무너뜨렸고 삶을 파괴했다. ‘급작스런 부재’와 맞닥뜨린 이들이 일상으로 복귀하는 과정 속에서 가족의 가치를 재성찰하는 영화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행복 목욕탕> 역시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촉발되는 화해와 용서와 사랑에 대하여 가족드라마 형식을 빌려 이야기한다. 후타바의 강단 넘치고 지혜로운 행동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료하다. 즉 급작스런 이별과 부재가 가족 균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사연과 상처투성이인 인물들을 보듬고 감싸 안은 후타바의 마지막 시간이 남겨질 이들의 앞날을 준비하는데 치중하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에서 후타바를 연기하는 배우는 90년대 누드집 ‘산타페’로 뭇 남성을 달뜨게 만든 미야자와 리에이다. 마흔 중반을 넘긴 여배우가 화장기 없는 얼굴로 모성을 연기할 때 그녀는 고혹적이고 농염한 여인이 아닌 씩씩하고 현명한 목욕탕집 안주인으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엄격히 보면 막장 소재이지만 죽음을 너무 무겁지 않게 다루면서 신파를 피해간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간간이 터지는 유머코드도 영화를 지루함에서 건져올린다. 예컨대 딸의 입을 빌려 못 미더운 남편에게 전하던 “이런 쪼잔한 남자한테 가족을 맡겨야한다니, 너무 걱정돼서 죽을 수가 없네”라는 말은 모든 엄마의 마음을 대변한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바뀌어도 엄마는 엄마이다. 여성인권이 향상되고 사회적 위상과 지위가 올라갔다고 해서 엄마가 다른 이름을 부여받거나 역할변경 되는 건 아니다. 지리멸렬한 일상과 문제투성이인 가족에도 아랑곳 않는 후타바의 강인함은 엄마라는 이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교복을 잃어버려 등교를 거부하는 딸에게 “도망치면 안 돼, 맞서야지, 네 힘으로 이겨내야해!”라고 말하던 모습과 친엄마를 만난 아즈미가 수화로 대화하며 “엄마가 언젠간 반드시 필요한 날이 올 테니 배워두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엄마의 이미지는 전 세계 공통이다. 엄마가 ‘신의 다른 모습’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철부지 아빠와 남겨진 두 딸은 후타바 없는 세상에서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행복목욕탕에는 언제나 따뜻한 연기가 피어오를 것이고,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