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도우즈]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작성자 : 맘스코리아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 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하나. 거칠고 무참한 흑인형제가 있고 그들 중 형은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자신의 선거자금 200만 달러를 털렸는데 강도들은 경찰에게 쫓기다 모두 죽었다. 흑인후보는 탈취범 중 리더의 아내를 찾아내 남편이 훔친 돈을 대신 갚으라고 종용한다. 흑인후보와 백인후보 간의 지지율은 박빙이다.

 

. 다정하거나, 폭력적이거나, 한량인 남편을 가진 네 명의 여성이 있다. 달리 말해 없으면 안 되거나, 있으나마나 하거나, 차라리 없는 게 나은 남자와 살던 여자들이다.

 

한 때, 여성과 흑인은 편견과 차별과 핍박의 아이콘이었다. 스테레오타입의 세계관은 여성과 흑인을 나약하고 가련한 피해자로 상정했다. 그러나 교활하고 폭력적이며 권력지향적인 백인과 남성의 악행에 대비되는 선하고 부드러운 존재로서의 여성과 흑인.’ 누군가 이렇게 글을 쓴다면 그는 반세기 이전 사람임에 분명하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흑인과 여성 타령인가. 그야말로 한 때의 이야기이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위도우즈>는 시카고 18구 시의원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을 배경으로, 선거자금의 획득과 이동으로 불거진 사건과 그 사건에 불가항력으로 엮인 미망인들의 생존기를 그린다. 남편들의 강도가 실패로 끝나고 절멸하는 것으로 시작한 영화는, 지지율 고공행진 중인 흑인후보와 6대째 뿌리내린 명문가 백인후보 틈바구니에서 벌이는 아내들의 복수를 메인 플롯으로 한다. 남편에서 아내로 이어지는 강도탈취극의 근원을 제공하는 건 혼탁한 선거문화와 추악한 정치판이다.

마약과 훔친 현금은 분실하거나 빼앗겨도 신고하지 못한다. 투명하지 못한 정치자금도 마찬가지다. 취득 과정의 불법성 때문이다. 청부업자를 내세우거나 조직을 파견하여 암암리에 찾을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악역은 동생의 역할이다.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는 잔인하고 대담한 방법으로 돈의 행방을 찾는다. 마지막 표심을 잡기 위한 홍보자금. 이 돈에 당락이 갈린다. 남편이 하는 무엇을 하건 아랑곳 않던 아내들은 남편도 잃고 자신과 아이들까지 위험해졌다. 하필 선거자금이고 하필 악당의 돈이라니. 제대로 꼬였다. 나쁜 놈의 돈을 훔친 남편을 둔 탓에 총 들고 복면을 써야하는 운명이 그녀들을 추동하는 순간이다.

<위도우즈>의 미덕은 고정관념을 전복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후보자 자질과 미래보다는 자신의 입지를 우선으로 고려하는 종교지도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존경 받는 종교인이 영화에 등장한 게 언제였던가) 폭력과 불법으로 얻은 돈으로 권력까지 쥐려는 흑인후보자를 내세워 핍박과 수탈의 이미지를 깡그리 뒤집는다. 시의원 연봉이 103천 달러이고, 이 돈은 우리가 1주일에 벌어들이는 수입에 불과한데 왜 시의원이 되려는지 모르겠다는 동생의 투덜거림에 권력이 생기기 때문이야라고 대답하는 형. 살상을 일삼고 불법으로 형성된 자본을 지키기 위해 정치와 손잡겠다는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할리우드가 흑인을 선하고 순수한 존재로 그려왔다면, 악행으로 취득한 자본이 정치권력을 탐하기 시작할 때 벌어지는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는 맥퀸의 시선은 남다르다. 돈과 권력 앞에 인종과 성별은 무관하다는 것. 일찍이 니체가 경고했던 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경구의 할리우드 버전이다.

 

선거는 이미지 싸움이다. 예상치 못한 백인후보의 승리. 흑인후보의 동생도 죽었고 백인후보의 아버지도 죽었지만 대중은 후자의 죽음이 기억되길 원했다.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흑인에서 백인으로 수평 이동하는 극적인 순간. (악행을 일삼던 후보의 동생을 징벌하고 그의 죽음을 폐기함으로써 관객을 안심시키는) 맥퀸이 장르의 쾌감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역사가 알려주는 강인한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남성적인 방법으로 복수서사를 완성했다면 <위도우즈>의 미망인은 여성과 모성을 지키면서 움직인다. 아이를 걱정하고, 계약연애일지언정 자신에게 다정한 남성에게 호감을 보이며, 운전기사의 노고에 보답하고 미래를 예비한다. 여성이 남성의 폭력과 맞서 이겨내는 방법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빤한 도식을 극복하면서 서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깔끔한 마무리까지. 그러니까 자신을 배신하고 혼외자까지 낳은 남편을 처단한 빅토리아가 쏜 마지막 한 발의 냉혹함을,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붙인 학교도서관 건립을 부탁하는 엔딩시퀀스로 상쇄시켜 얼룩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것. 영화의 마지막 카페에서 조우한 미망인들의 표정이 마뜩한 건 남자들의 진흙탕 싸움에서 살아남아 다시는 남자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 싸구려 취급받지 않을 것인성숙한 인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고 경북공무원교육원 전임이며 서울독립영화제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고전영화보기 모임 ‘시네마 옴스’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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