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나라야마 부시코] 어머니, 그 이름에 새겨진 용기

맘스코리아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제 36회 칸 국제 영화제의 시상식, 장내에 가득한 뜨거운 박수. 금색 기모노에 몸을 감싼 주연배우 ‘사카모토 스미코’는 프로듀서인 쿠사가베 고로와 함께 영화계의 거인 ‘오손 웰즈’로부터 트로피를 받는다. 무대에 올라 원기 왕성한 목소리로 “메르시...”를 반복할 때의 사카모토는 자신이 연기한 다부진 ‘오린’ 그 자체였다. <나라야마 부시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일본의 어느 작은 마을. 도무지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시적인 부락이다. 오직 식욕·성욕 같은 원초적인 욕구만이 주민의 관심사이다. 위아래 서열도 없어 서로가 함부로 대하고 근친상간과 강간마저 묵인되는 공간. 논밭과 숲속 가릴 것 없이 몸을 합치고 헐떡대며 수치를 잊은 사회. 팔아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딸이 더 귀한 대접 받고 갓난 아들을 남의 논에 거름으로 버리는 행위가 자행되는 곳이 <나라야마 부시코>의 공간이다. 이런 반윤리적 행동에 대한 사회적 제제는 없다. 마을의 유일한 금기는 ‘양식 도둑질’이고, 집단 제제가 가해지는 대상도 이것뿐이다. 이 원시적 공간에 주인공 ‘오린 할머니’가 산다. 이제부터 영화는 날것의 진정성으로 어머니와 노인의 희생을 증언한다.

 

영화 종반부, 오린 할머니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라야마 산행’(고려장과 유사한 습속으로 마을 규범이다.)을 단행한다. ‘나라야마’는 ‘졸참나무 산’이라는 뜻이다. ‘부시’는 일본 민속음악의 일종이고 ‘코’는 고찰이라는 뜻이니 이를 모두 보태 보면 ‘졸참나무가 많은 산마을의 전승민요에 대한 고찰’ 정도가 된다. 오린 할머니가 큰아들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 산에 오르는 장면은 지루하리만치 조용하고 경건하며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힘겹게 만든다. 마침내 다다른 산 정상. 정상에는 까마귀들과 눈부시게 흰 백골들이 오린을 맞이한다. 이 끔찍한 모습과 마주하고도 오린은 초연하고 단호하다. 마음이 약해진 아들의 뺨을 때리면서까지 나라야마에서의 임종을 고집한다.

예순여덟 살에 불과한 오린이 기쁜 마음으로 나라야마 산행에 나서는 건 규범을 지키려는 의무감에서가 아니다. 자신의 희생이 ‘새로운 세대를 위한’ 밑거름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쯔가 가족과 함께 죽임 당하자, 한입 덜게 되었으니 나라야마 산행을 늦추라는 아들과 큰며느리에게 오린은 자신의 뜻을 정확히 전달한다. “새 식구는 언제고 또 들어오기 마련이다.” “내일 새벽, 난 나라야마에 갈 거다. 사람들을 불러다오.” 나라야마 산에 남겨진 뒤, 오린의 말대로 손주는 새 아내를 집으로 들인다. 새 식구가 다시 오린의 ‘입’을 채우게 되었으며 머잖아 아기도 생길 것이다. 오린의 나라야마 산행은 자신을 희생하여 새로운 세대가 들어설 여지를 만들어준다.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야만에 가까운 공동체를 지탱해온 힘은 젊은 세대를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늙게 보이려고 고의로 자기 치아를 부러뜨리고, 나라야마 둔덕에서 아들의 위해 자기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아당기며 생의 마지막이 될 주먹밥을 기어코 아들에게 먹이려던) 어머니와 앞선 세대의 희생이라고 말한다. 살기 위해 아들에게 매달리는 옆집 할아버지와 자신을 두고 내려갈 것을 명령하던 오린의 의연한 태도가 교차될 때, 우리는 어머니라는 이름에 새겨진 용기와 만난다. 눈을 맞으며 꼿꼿하게 앉아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이미 작은 부처였다. 유독 어머니를 사랑한 아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차마 내려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아들의 모습이 내리는 눈과 오버랩 되던 그 가슴 무너뜨리는 미장센.

「사람을 읽는 자는 적어도 그 사람의 인생보다 깊어야 하고,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역사만큼 넓어야 한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나라야마 부시코>는 현대적 가치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풍습을 냉정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생명력과 삶의 본질은 어디에서 오는지, 제도와 본능이 상충되는 공간에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오직 그 시절 그 장소에 거했던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뒤이어 오는 세대를 위한 희망의 전령으로서의 자기희생.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인생의 쓴맛을 더 보고 난 뒤의 얘기일 터다. 나이 들어 힘없고 작은 여성의 육신이지만 깊은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힘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다.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다. 노인의 경험과 세월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