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미쓰백] 모성이 있거나 없거나, 뭐가 문제인가

맘스코리아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한국영화가 모성 콤플렉스에서 좀체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고 평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 아니다.). 여성과 모성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 치더라도, 모성은 당연히 여성의 전유물로 인식한다하더라도 영화가 선택한 모성의 밀도는 지나치게 즉흥적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다. 참혹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불쌍한 아이에게 더욱 연민이 생긴다하여, 그것을 모성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모성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영화의 시작은 이 물음으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이지원 감독의 <미쓰백>은 한지민의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더 유명해진 영화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릴 적 엄마에게 학대 받아 세상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먼저 배운 여자 미스 백(이름은 백상아)이 아동학대에 신음하는 아이를 만나고 구출하기까지의 분투를 그린다.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화장기 없는 초췌한 낯빛을 시종 유지하는 한지민의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는 한국영화의 진부한 공식을 따라간다. 죽음 앞에서 화해하는 가족여성캐릭터의 모성 이식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배우 원 톱인 한국영화에서 여성캐릭터는 필연적으로 억세거나 폭력적이거나 복수심에 불타기 마련인데, 여기에 모성에 잠식당하거나 모성을 이식 당함으로써(뜬금없이 아이가 등장하거나, 가련한 아이를 만나거나) 전사의 이미지를 버리고 여성성을 회복한다는 것. 예컨대 <차이나타운>이 그랬고 <악녀><미옥><마녀>가 모두 같은 궤도를 달렸다.

 

모성은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모성은 교육으로 다져지고 완성되었다. 한국사회에서 모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 역시 근대화와 맞물린다. 근대화는 곧 서구화를 의미했고 모성 또한 같은 궤적을 따랐다.

<미쓰백>에서 백상아는 태생적으로 불우하고 척박한 환경에 익숙한 사람이다. 알코올중독인 엄마로부터 도망쳤고 모든 상황의 원인제공자를 응징하면서 전과자 낙인을 얻는다. 제대로 된 교육은커녕 부모의 사랑도 받은 적이 없다. 심지어 가정폭력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간 순간을 기억하는 여성에게 모성이 작동한다는 얘기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요지부동이던 얼음장 같은 여자가 폭력에 신음하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만나면서 허물어진다. 감독은 결정적 순간마다 주저하고 체념했다가 기어이 아이를 향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이 감정은 이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어필한다.

 

감독은 모성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작심한 듯하다. 시종 모성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영화에서, 백상아가 단 한 차례도 모성을 제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아이를 구하고 싶을 따름이다. 백상아의 조역자인 강력반 형사 장섭은 그건 연민이고 일시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진짜 아이를 키우고 싶은 거냐고 거듭 묻는 건 이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멀고 아이 구조가 시급한 상황 앞에서, 즉흥성과 계획성, 연민과 모성 사이에서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백상아는 아이를 구한다. 모성은 교육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회 전통과 관념을 일거에 격파하는 순간이다. 학습과 무관하게 추동한 이 감정은 무엇으로 불려야 옳을까. 영화 내내 모성과 도덕이 충돌한다. 모성의 틀을 벗어날수록 모성으로 귀결되는 아이러니. 모성이면 어떻고 인정과 연민이면 어떠랴, 정작 중요한 건 아이의 생명과 인간존엄인 것을.

가족 간의 불화를 극복하고 용서함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서사는 한국영화에서 익숙한 설정이다. 이런 상황마다 누군가의 희생이 요구되기 마련. 삶과 죽음은 언제나 동격이고 같은 궤도를 달렸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예비한다. 상아 엄마의 죽음은 아이를 지옥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안긴다.

 

일찌감치 체득한 세속에의 매혹과 욕망을 버리고 금욕의 세계로 향하는 믿음이야말로 위대하다. 모성이 손짓하는 지점에서 멈추지 말고 자기 욕망을 찾아가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 건 이 때문이다. 매몰차고 비도덕적이라 비난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쓰백>모성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과 훈련으로 완성되는 것인지와 관련한 논쟁 무용론을 장착한다. 대체, 그게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 미쓰 백은 아이를 구했고, 아이는 새 삶을 얻었으며 악인은 처벌을 받았다. 그녀에게 모성이 있든 없든, 박애였든 연민이었든 아이를 구한 건 잘한 일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