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물숨] 그렇게 엄마는 바다가 되었다

맘스코리아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엄마인 해녀 뒤를 이어 딸도 해녀가 되었다. 딸은 자기 자식만큼은 바다로 내보내고 싶지 않아 죽을힘을 다해 물질을 했다. 공부를 잘해 뭍으로 간 아이는 간호사가 되었고 결혼도 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가 허락한 만큼 채취하면서 평생을 살아온 이들은 저마다의 가슴을 고생 반 보람 반으로 채웠다. 어떤 노동이 신성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땀방울이 아름답지 않겠냐마는 매순간 목숨과 수확을 바꿔야하는 해녀만큼 위험천만한 공간을 일터로 삼는 이들이 또 있을까.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물숨>은 제주 우도 해녀의 삶을 다룬다. 글보다 물질을 먼저 배우는 제주 여성의 삶은 장엄하고 숭고하다. 바다에서 제몫을 다하는 빨간 테왁과 닮았다. 매혹적이고 위험하며 강렬하고 자유롭다. 영화는 해녀의 사계절을 7년간 함께한 만큼의 여유와 풍요를 모두 품는다.

모든 것은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 탄생과 삶의 서사가 시작되는 바다에서 엄마는 죽도록고생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고생한 사람은 없을 거라던 엄마와 딸은 같은 바다에서 물질을 했고, 어느 날 엄마는 물숨을 만나 세상을 떠난다. 영화 종반 끝내 바다에서 숨을 놓아버린 해녀의 죽음 앞에서 감독은 비탄의 정조와 유가족의 슬픔 어느 것도 소리 높이지 않는다. 조용히 바다로 나가는 그녀들을 보여줌으로써 바다와 함께 살아갈 숙명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통곡하는 자식의 모습도 잠시(영화적 시간으로 약 2분이 흐른 후) 딸은 엄마의 바다로 향한다. 그곳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렸고 엄마의 삶이 배었으며 이젠 엄마가 잠든 바다로.

해녀가 물숨을 이기지 못하면 위험해진다. 자기 호흡의 한계를 넘기기 직전 수면 위로 올라와 숨비소리를 내야한다. 찰나를 놓치면 물숨은 해녀를 감싼다. 귀하고 비싼 것을 놓치지 않으려다 화를 당한다. 대표적인 물건, 예나 지금이나 비싼 값에 팔리는 전복이다. 오죽하면 임금까지 나서 전복 진상을 물렸을까.

 

매번 전복 캐는 수고로움을 생각해보니 어찌 전복을 먹을 생각이 나겠는가.(每想採鰒之苦 豈有啖鰒之思)정조 임금은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공물로 바쳐지는 전복 값이 단 수십 냥이라고 한탄하면서 이제부터 전복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조선왕조실록의 정조 14(1790) 기록은 제주의 절인 전복을 특별히 공납에서 면제하라적고 있다.

 

건져 올린 수확물이 곧 숨 값이라는 사실은 노동의 무게를 몇 곱절 높인다. 위험한줄 알면서도 욕심 부릴 수밖에 없는 근원에는 가족이 자리한다. 해녀의 고된 노동이 남편의 술이 되고 아이들의 학비가 되고 집안의 살림이 되었다, 고 내레이터가 말할 때 무너지는 마음까지 추스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땅이 척박해 남자는 고기를 잡고 아낙은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림을 꾸리는 삶. 영화는 남녀불평등과 구조적 불합리를 성토하지 않는다. 어설픈 시선을 들이대어 고발하고 가르치기보다는 그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질박하고 강인한 생명을 조망한다.

감독이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유형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한 줄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땅에는 제주에만 해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도 호남과 충청에도, 숫자가 적을 뿐 해녀는 바다가 있는 지역 어디에나 있다. 설사 대표성을 띈다고 해도 문화유산 등재를 앞세워 제주해녀를 특정 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판단했을까. 해녀의 삶이 곧 여성과 어머니의 고단한 투쟁이라면 그것은 제주해녀에 국한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른다. 숨비소리 한 번 내본 적 없는 이가, 그러나 제주를 고향 삼아 듣고 보고 자란 감독이 고향 어머니와 여성의 삶을 뭍으로 길어 나르는 방법은 그녀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는 길 뿐이었으리라. 그래서 곱고 애잔하고 씩씩한 영화 <물숨>은 제주 우도 해녀와 제주의 어머니 혼신의 목소리가 담긴 곡진한 삶의 기록이다. 진부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상찬에의 유혹을 돌파한 감독의 선택이 미쁘다.

 

해녀의 삶은 곧 이 땅의 어머니가 걸어온 길이다. 그녀들의 넋두리가 해녀에 관한 객관적 사실 진술에 머물고 이마저 최소화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미학적 고민이 담긴 오프닝 신이 어떤 고민도 없이 그대로 붙인 엔딩(시작과 동시에 흐르던 내레이션은 엔딩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과 만날 때 제주의 어머니는 해녀가 되고 바다가 된다.

 

내 고향 제주에는 바다로 출근하는 여인들이 있다. 아무런 장비 없이 그녀들이 바다 안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숨을 멈추는 것뿐이다. 그 여인들을 바다의 여인, 해녀라 부른다. 제주에는 4.500명의 해녀가 있고 우도에도 340명의 해녀가 활동 중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