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당신의 부탁] 어른이 답할 차례다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영화 : 당신의 부탁]  "어른과 세상이 답할 차례다"


영화포스터는 핏기 없는 임수정의 옆모습을 사용하였다. 밝고 유쾌하고 활력 넘치는 영화가 아니란 건 자명해보였다. 영문제목은 Mothers이다. 엄마가 여럿 나오거나 여러 명의 엄마를 가진 아이가 나오거나 일 터였다. 후자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공부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효진 앞에 나타난 시동생,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하지 않느냐면서 남편의 전처가 낳은 자식 종욱이를 맡아달라고 요청한다. 그녀는 아이의 엄마가 아니다. 생모는 일찌감치 죽었고, 아이를 키우던 두 번째 여자는 신병에 걸려 집을 떠난 후 무속인이 되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부방도 정리하는 마당에 열여섯 살짜리 아이까지 떠안은 효진과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떠맡겨진 종욱의 한 지붕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동은 감독의 <당신의 부탁>은 낳은 정과 기른 정에 관하여 판단을 청하는 영화가 아니다. 한없이 건조한 얼굴로 재생과 회복을 꿈꾸는 독특한 드라마다. 생의 절벽에서 만난 두 인물이 자신들 사이에 놓인 절박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면서 사람과 삶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회복해간다는 것.


종욱에게는 낳은 생모와 기른 두 번째 엄마가 따로 있고, 아빠의 마지막 여자인 효진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지만 그를 맡고 있는 엄마다. 모자처럼 한 공간에서 사는 효진과 종욱이지만 둘 사이에 갈등이란 없다. 아니 없어야 맞다.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상황이고, 공통관심사가 없기 때문이다. 추억의 공집합이 없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유령 같은 존재로 상정한 심리적 폐허의 공간,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전진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 그리고 지금 여기, 같이 사는 ‘당신’을 정의내리기 위한 난처한 질문이 그것이다. 삶에 지치고 사랑의 좌절을 온몸으로 품고 살아가는 당신에게 아니 서른두 살 여자에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와 같이 살아야하는 상황이 되었다. 곱게 지내도 마뜩하지 않을 아이는 생모를 찾아 수시로 집을 나선다. 어떡할 것인가. 친절과 관심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강효진의 <나쁜 피>에서 딸은 패륜한 아버지를 결박한 채 “당신과 최성자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어, 그럼 당신은 나와 무슨 사이야?”라고 물을 때, 가족영화의 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피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러므로 <당신의 부탁>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건 종욱이 본 어른들의 세상이다. 즉 역할이 뒤바뀐 사회다. 궁금한 쪽을 침묵시키면서 일방적 질문으로 일관하는 불온한 어른들이다. 걸핏하면 학교를 빼먹는 과묵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와 그 아이와 어울리면서도 다른 남자의 애를 가진 여고생을 바라보는 효진의 시선, 즉 기성세대의 시선과 나를 버리고 떠난 두 명의 엄마와 나를 거둔 효진을 둘러싼 어른들의 세상을 탐색하는 종욱의 냉소가 충돌할 때 질문은 환상방황(環狀彷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제거되지 않은 원인을 덮은 채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어른들의 세상이다. 살다보면 불가피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그 모호하고 미심쩍은 인과관계가 항상 궁금하다. 그건 호기심이 아니라 일의 순서이다. 문제를 풀어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알려준 건 어른들이었다. 효진은 영화 내내 “물어보면 뭐라고 말을 좀 해봐라”고 종욱에게 대답을 종용한다. 하지만 아이는 대답할 게 없다.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놓은 납득하기 어려운 환경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대해 온통 질문거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종욱이 엄마를 찾아 나선 것도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친모가 아니었다. 왜 나를 두고 떠났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대답을 해줘야할 어른은 질문으로 무마한다. 이해 못할 세상에 대한 답은 어른 몫인데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집으로 가는 경사로를 뛰어올라가 효진의 장바구니를 들어주는 종욱은 비로소 흉금을 터놓는다.종욱의 발걸음은 의젓해졌고 효진의 발걸음은 느슨해진다. 새로운 가족 앞에서 맘 졸이며 불편한 공기를 헤치던 그의 몸이 가벼워진 덕분일까. 에필로그처럼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뜬금없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은 효진의 심신이 더는 무너지지 않을 거란 걸 알려주는 일종의 안전판이다. 더는 종욱이 방황하지도 엄마를 찾지도 효진에게 데면데면하지도 않을 테니까 질문과 대답이 뒤바뀐 세상에 힘차게 뿌리내리려는 선하고 진실한 마음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젠 어른과 세상이 답할 차례다.

(추신)

<당신의 부탁>에서 주목할 것은 엄마의 탄생, 모성의 탄생, 여배우의 탄생이다. 서른두 살 효진을 연기하는 배우 임수정은 성마른 얼굴에 조근 조근거리는 목소리로 자기 앞에 도착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떠맡겨진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야하는 달갑지 않은 상황을 엄마라는 거대한 이름을 앞세워 돌파한다. 임수정이 이런 연기를 한 예를 나는 알지 못한다.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장화, 홍련>의 ‘수미’로 돌아간 그의 연기를 다시 만났다.  임수정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