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인 굿 컴퍼니 (In Good Company)] 우리는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무턱대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우습고 슬픈 표어가 있었다. 산아제한운동이 활발하던 70-80년대 얘기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의 시대, 국민이 동참한 덕분이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었는지 몰라도 산아제안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듯했다.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지 못했고 공중보건과 위생과 의료복지체계가 확립되기 이전 시절의 일이다. 21세기 한국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평균수명이 높아지면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출산율을 높이려 안간힘 쓴다. 지자체들은 다양한 정책과 혜택을 통해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한다. 마치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다 키워줄 듯이, 옛날 어른 말처럼 ‘저 먹을 건 지가 갖고 태어난다’는 말을 믿으라는 듯이 말이다.

 

김성호 감독의 독립단편 <인 굿 컴퍼니 (In Good Company)>는 2006년에 만들어진 옴니버스영화 ‘가족시네마’의 맨 끝에 자리한 작품이다. 만삭의 이지원 대리를 놓고(회사의 명운이 걸린 이 중차대한 시점에 그녀는 야근을 할 수 없다) 벌어지는 구성원 간의 이해다툼과 한국사회가 바라보는 워킹-맘에 관하여 사내 유일한 남성인 편집장과 직원들의 진술이 플래시백으로 이어진다. 솔직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일관하는 영화가 주목하는 건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의 험난함이다. 시작은 삼정기업 사보 수주를 위해 사흘 째 밤을 샌 어느 새벽 7시, 영진기획 사무실 풍경이다.

 

영진기획은 3일 이내 80페이지 분량의 사보로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삼정기업과의 거래가 트이면 회사의 미래는 탄탄대로다. 회사가 잘돼야 직원의 앞날도 밝다. “빨리 정리하고 좋은 사람 들여야지?”라며 편집장을 압박하는 사장도, “나도 임신하자마자 조기퇴직하고, 2년 뒤 재취업했어. 자기 하나 살리자고 우리 다 죽일래?”라던 한과장도, 갓 신입 티를 벗은 직원도 회사가 중요하긴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월급이 중요하다. “회사 있고, 나 있는 거잖아”라는 편집장의 말은 한국의 집단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정언명령이 된지 오래다.

 

사측은 권고사직이고, 직원 입장에선 부당해고가 되는 미묘한 경계선에서 영화는 진행된다. 부당해고에 맞서 단체행동 하던 동료가 어느새 하나 둘 떠나며 자기 살 길을 찾는 장면과 “한 때 뜨겁지 않았던 사람이 있나요?”라며 그들의 행동에 냉소로 일관하던 한과장이 어린이집으로 딸을 데리러가지 못할 때의 자괴감은 한국사회에서 이중삼중으로 포획된 워킹-맘의 자화상이다. 이 바닥에 남자가 귀하다는 편집장의 말처럼 영진기획의 모든 여성이 단 한사람의 남성(가부장 혹은 갑을로 규정된 자본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속을 이루거나 와해된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이대리 해고를 둘러싼 내용은 서브플롯이었을 뿐이다.

 

한편 그들을 묶어놓은 것은 가족과 아이다. 편집장의 아내 또한 만삭이고,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은 가족에게 실망을 줄 수 없으며 한과장은 “다음 주에 월급 나오면 유치원비부터” 낼 계획이다. 이들에게 일터는 복직을 위한 안간힘이고 부모에 대한 자식의 도리이며 자식에 대한 엄마의 의무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이토록 견고하고 완고하며 성역이다.

 

<인 굿 컴퍼니>는 누가 옳고 그르며 누가 악인이고 누가 배신을 했느냐를 따지는 윤리드라마가 아니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직장인으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 천로역정에 다름 아님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활극이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각자의 행동이(설사 그것이 불가피했다하더라도) 상대에게 상처 입히고, 그 무수한 상처투성이를 딛고 다져진 기업문화 자장 안에서 혹은 사회구조 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상처로 환원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워킹-맘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졌고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세상은 변화하는 듯해 보인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추세다. 젊은 부부들일수록, 대도시일수록, 서울일수록 아이 낳기를 꺼려하는 그들을 만나고 싶거든 이 영화를 보라.

 

영화의 엔딩은 더욱 모골송연하다. 인터뷰를 마친 편집장은 업계에서 흔치 않은 남자신입사원을 카메라 앞에 세우며 신혼 초인데도 아이 낳지 않겠다고, 정관수술 받았다며 관객을 향해 말한다. “우리는 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대리에게도 애기 잘 키우고 건강하라고 전해주세요.” 전쟁 같은 난리를 겪은 그날에 관한 진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 잘 지내고 있다.’는 것으로 무마되고 압축된다. 이보다 무섭고 섬뜩한 전언이 또 있을까. 곧 가족주의에의 균열을 도모하는 미동에 대한 일종의 선전포고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지 6년이 흘렀다. 한국사회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과연, 우리는 달라졌는가. 제 65회 칸 영화제는 이 빼어난 단편영화에 ‘비평가주간 카날플러스상’으로 헌사 한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