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경축! 우리사랑] 봉순씨의 생산적 활동을 위하여!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한 때 TV 아침드라마는 치정과 불륜으로 그득했었다. 평일 오전시간 주부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그들의 욕망을 자극할 수 있는 소재로 더 없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여성을 이중 억압함으로써 남성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바람난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내거나 유부남과 통정한 여성을 단죄함으로써 가족과 가정의 복원을 기치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중견배우 김해숙의 첫 단독 주연작인 <경축! 우리사랑>을 보기에 앞서 '여성 욕망에 관한 빤한 판타지'일 것이라고 예단한 것도 그간 여성의 성적욕망을 다뤄온 영상매체의 불편한 관행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생산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자면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행위일 터이다. 문제는 생산적 활동이라는 것이 각자의 환경과 처지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나 같은 영화글쟁이가 집에서 DVD를 시청하거나 극장에 가거나 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쓰는 행위는 생산적 활동인 반면 회사원이 주말 영화관을 찾거나 TV 영화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은 비생산적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생산적 활동일까? 이 또한 마찬가지일 터인 즉, 사람에 따라서는 아이보다는 일을 좇아 자기성취에 매진하는 것이 더 생산적인 활동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점균 감독의 <경축! 우리사랑>은 생산적 활동에 대한 완고한 보고서이다.

영화는 어느 변두리, 그러니까 미용실에서 머리할 여유는 고사하고 모여앉아 인형 눈깔 붙이거나 봉투 붙이는 부업이 여전한, 재개발을 앞둔 추레한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그 속에서 봉순에게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통념을 파괴할 뿐더러 아연실색할 사랑이다. 주인공 봉순의 늦바람이 질풍노도처럼 동네를 휩쓸고 러브바이러스가 구성원들에게 전파되어 유치한 판타지를 꽃피우는 가운데 생기는 한 가지 의문. 도대체 쉰 줄에 접어든 이 여자는 왜 스무 살이나 젊은 남자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을까? 서두에 생산적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단 등장인물을 소개해보자. 하숙을 치고 노래방을 운영하는 '봉순씨'가 있고 그녀 집의 하숙생이면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구상'이 있다. 여기에 봉순의 남편의 정부이자 미용실 주인인 ‘젊은 여자’ 정도면 인물 소개는 거의 끝난 듯하다. 그러면 나머지는? 그게, 다른 인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봉순의 딸도 봉순의 남편도, 또 허구헌날 그와 술 대작을 벌이며 놀기 바쁜 뭇 사내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소비적 활동에만 몰두하는 비생산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봉순이 연정을 품은 사내가 동네에서 유일하게 생산적 활동에 매진하는 세탁소 주인 구상이라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어머니와 아내로 통칭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여성들 입장에서 볼 때, 봉순의 일탈과 욕망성취 과정의 파격성이 불쾌할 이유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사한 소재를 가진 영화들이 놓친 것, 이를테면 한 여성에게서 희생과 인내의 삶을 제거했을 때 여성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부재라는 한계를 <경축! 우리사랑>은 가뿐하게 돌파한다. 철없는 중년여성의 욕망성취라는 진부한 내러티브를 넘어 생산적 활동과 비생산적활동 사이의 놓인 남성의 위상재정립이라는 거시담론까지 확장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는 말이다.

영화의 후반, 우리는 두 가지 명제와 마주한다. 생산적 활동자의 입지 강화와 그럼에도 가족의 이름으로 여성을 묶어두려는 여전히 견고한 가부장제가 그것이다. 예컨대 봉순이 생산한 잉여물을 소비하던 남편과 딸은 "우리가 엄마를 이해해야"한다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해피엔딩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관객들이 헛웃음을 지은 이 장면은 사뭇 시사적인데, 봉순을 흡혈하던 사람들이 졸지에 피해자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추락한 비생산자의 처량한 처지를 그려낸 듯 보이는 이 장면이 사실은 여성주체가 넘어야할 견고한 가정의 벽을 명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경축! 우리사랑>은 중년여성의 단순한 일탈기가 아니다. 남편의 외도에 맞바람으로 맞서는 즉흥적 로맨스도 아니요 성욕을 주체할 수 없어 젊은 사내 품을 파고 들어야 직성 풀리는 도화살 낀 여자의 이야기는 더욱 아니다. 요컨대 <경축! 우리사랑>은 성적담론을 제거하고도, 그 범위와 공간을 가정 안으로 한정시켜 놓고도 여성의 인정투쟁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드문 사례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봉순씨의 생산적 활동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백정우 영화평론가

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이며 영화무크지 「영화로운대구」 편집주간이다. 서울독립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고전영화 보는 모임 ‘키노클럽’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