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 왕조의 넋을 마주하다

신들의 정원 종묘(宗廟)

작성자 : 한국애드 박선경에디터 (hkad1770@chol.com)

 

 

“궁궐은 주인 없는 죽은 공간이 되었지만
 
종묘는 현재까지도 산 공간으로
  오늘날의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는 오래 전 이미 끝이 났지만. 조선을 호령했던 왕들의 넋은 아직도 종묘의 그 어딘가에서 현재의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 그리고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죽은 후에 왕의 칭호를 올려 받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왕실의 사당이다. 조선왕조가 쇠락한 지 10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전통 방식대로 제사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왕이 살아생전 천하를 호령하던 궁궐은 주인 없는 죽은 공간이 되었지만 왕이 죽어서 가는 종묘는 현재까지도 산 공간으로 오늘날의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유교 신전인 종묘는 왕실의 제사를 치른 곳이기 때문에 도읍지에 세워졌고, 그 위치는 궁궐의 동쪽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유교 경전에 규정돼 있다. 즉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세웠다. 종묘는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인 1394년 12월부터 짓기 시작해 이듬해인 1395년 9월 완공됐다. 태종 10년(1410)에는 정전에서 제사지낼 때 비를 피할 수 없다 하여 동서에 월랑을 지었으며 창건 당시 정전 울타리에 밖에 있던 공신당이 정전과 멀리 떨어져 불편하게 되자 담장 안의 동쪽 계단으로 옮겼다. 헌종 2년인 1836년에는 정전과 영녕전 모두 선왕들의 신위로 꽉 차자 정전의 태실을 4칸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됐다. 종묘의 중심 건물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이다.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의 신주가 모셔져 있고, 정전 뜰 앞에 있는 공신당에는 정전에 계신 왕들의 공신 83위가 모셔져 있다. 그리고 세종 때 지은 영녕전에는 정전에 더 이상 모시지 않게 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옮겨왔다.

 

“화재가 발생했다. 돈과 식량이 들어 있는
  창고는 구제할 수 없게 되더라도,
  종묘와 창덕궁은 힘을 다하여 구하라!”

조선왕조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있던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부산항에 상륙해 파죽지세로 조선을 점령하자 왕은 허겁지겁 의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런 황망한 시기에도 왕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이 종묘에 모셨던 왕가의 신위였다. 도성에 불이 나면 진화 1순위로 꼽혔으며 임금조차 걷지 못하는 길이 있을 정도로 왕의 절대 권력이 통하지 않던 곳이 바로 종묘다. 종묘를 잃는 것은 나라를 잃는 것이요, 종묘가 불타는 것은 곧 나라가 불타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처럼 종묘는 문화유산의 보편성과 특수성, 전통성과 현대성, 민족성과 국제성 등으로 봐도 조선왕조를 대표할 만한 문화유산임에 틀림없다. 조선 왕조의 500년의 역사가 계속될 때 종묘는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와 같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발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外大門)에 들어서면 널찍하고 거친 돌을 깐 세 가닥의 길 ‘삼로(三路)가 뻗어 있다. 조금 높은 가운데 길은 혼을 위한 신향로(信香路)이고, 동쪽의 낮은 길은 제사 때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로(御路), 서쪽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다. 절대 권력자인 왕도 신 앞에서는 제사를 맡는 제관인 것이다. 정전의 남쪽에 낸 신문(神門)으로 들어서면 거칠게 다듬은 돌이 깔린 월대가 나온다. 월대는 제례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단인데, 이곳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이 만나는 공간이자 천상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월대 중앙에는 남쪽의 신문에서 북쪽의 정전까지 이어지는 신로(神路)가 길게 나 있다.

종묘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가장 정제되고 장엄하며 신성한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모든 건축은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돼 있다. 장식을 배제하고 공간은 단순하게 구성했으며, 단청도 가장 기본적인 색채로만 처리해 종묘건축을 상징적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교적 제향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유교 문화의 국가적 제향인 종묘대제는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됐다. 중국에도 고대부터 종묘와 같은 태묘(太墓)가 있었지만 한 왕조가 명망하고 새왕조가 성립되면 가장 먼저 전복된 종묘를 없애고 새왕조의 종묘를 신축하는 것이 역사적인 통례였으므로 최후 왕조인 청 태묘만이 북경에 남아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락펴락 하는 왕이지만 왕의 고개를 숙이게 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하늘의 무서움을 알려준 것은 바로 살아있는 사람보다는 이 세상을 먼저 살다간 선조였다. 이처럼 종묘를 통해 삶과 죽음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하고, 어떤 위대함과 존엄함도 하늘 아래에서는 매 한가지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Tip> 체험학습 떠날 때 미리 보면 좋아요!

종묘 조선 500년 왕과 왕비의 넋이 깃들어 있는 사당 글 허균/ 그림 배종숙주니어김영사
종묘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글 윤여림/ 그림 김세현웅진주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