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입다;정체성을 가진 미적 가치의 진화

작성자 : 한국애드 서순정에디터 (atatop@naver.com)

 

 

현대사회에서 옷은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마찬가지로 전통의복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역사와 가치관 그 자체이다. 국가와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전통의복은 그 지역의 기후와 문화적 특색, 지역 사람들의 기호와 사상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500년부터 이미 서양에 비단을 수출했던 중국에서 나무 두 개짜리 허술한 베틀을 사용했던 이름 없는 직공, 그보다 훨씬 더 이전 추위나 햇빛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만들어 입던 인류의 조상들로부터 시작된 전통의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유물이 아닌 전통의복의 이유 있는 재해석

산업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복은 한결같이 간소화되었고, 전통의복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유물이 되어갔다. 1900년대 폴 푸아레Paul Poiret에 의해 유럽의 여성들은 코르셋으로부터 해방되었고,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가브리엘 샤넬은 ‘간결한 것, 감촉이 좋은 것, 낭비가 없는 것’이란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편안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전통의복에 대한 재해석은 여전히 활발하다. 특히 동서양의 경계가 사라져 한복, 기모노, 치파오 등을 모티브로 하는 세계적인 컬렉션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rera, 샤넬Chanel,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의 컬렉션 등에서 ‘한복’이 모티브가 되었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에 유행한 시누아즈리Chinoiserie 열풍과,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자포니즘Japonism 같은 현상도 전통의복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통의복은 단순히 조상들이 입던 오래된 옷이 아닌, 문화와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소재이다.

 

전통의복의 색과 문양, 그대로 회화가 되다

전통의복, 특히 동양의 전통의복이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며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현상은 우연한 유행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동양의 전통의복은 ‘기모노’로 일찌감치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적 이미지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우키요에(일본 에도시대 서민계층을 기반으로 발달한 풍속화, 주로 목판화 형식으로 반 고흐를 비롯한 많은 서양화가들에게 영감과 영향을 준 회화양식)와 기모노는 일본을 넘어 동양을 상징하는 수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기모노를 펼쳐 액자에 넣어 걸어두면 화려한 색과 문양은 그 모습 그대로 회화 작품이 된다. 흔히 인도네시아의 전통의복을 ‘바틱‘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바틱은 원래 자바어로 ‘점이나 얼룩이 있는 천’이라는 뜻의 ‘암바틱Ambatik’에서 유래한 말로 염색 기법의 일종이다. 왁스에 저항성을 가진 염료의 성질을 이용하여 천을 염색하는 기법으로 인도네시아 뿐만 아니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나이지리아 등에서도 발견된다. 바틱 기법으로 염색한 천을 사용하여 의복을 만들었기에 바틱은 전통의복을 지칭하는 말로 확장되어 쓰인다. 다시 말하자면 바틱 기법으로 염색한 천의 독특한 질감과 무늬가 인도네시아를 비롯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스리랑카 등의 전통의복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인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만드는 인도네시아 바틱은 의식과 패턴, 모티브의 상징으로 지역의 정체성과 창의성 같은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의복으로 만들어지기 이전의 패턴만으로도 태피스트리로서의 가치가 훌륭해 회화적 감상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