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실패의 연대기] Y의 사례를 읽어보다

작성자 : 맘스코리아 (atatop@naver.com)

예고된 실패의 연대기

마르께스의 소설 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며 읽을 수 있다. 오래된 관습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살펴볼 수도 있고, 방관자 효과라는 심리학적 현상을 관찰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달픔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공감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얇은 책 한권으로 여러 가지 관점을 고려하며 읽을 수 있고,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끝없는 설을 풀어놓을 수 있기도 하다.

한가하게 책 이야기나 하자는 것은 아니다. 예고된 실패의 연대기를 보여주는 Y의 사례를 얘기하려고 서두가 길어졌을 뿐이다. Y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입학하여 내과 전문의가 되었고, 마음에 드는 착하고 잘생긴 이비인후과 의사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서울의 유명 병원에서 팰로우 과정을 거친 후, 잘 나가는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녀가 결혼과 더불어 지방으로 오게 되었다. 그랬다. 그녀는 모든 원인이 남편과의 잘못된 결혼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진료실을 벗어나 첫 아이를 양육하면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Y는 뛰어난 두뇌를 풀가동하여 검색한 결과, 나를 찾아내었다. 아 오해마시라. 이것은 나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그녀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뿐이니까. Y는 산후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스스로 내리고 자신에게는 약물치료보다 인지행동 치료가 더 필요하다며 치료 계획까지 직접 세워왔던 것이다. 내과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니 정신 건강 문제에도 나름 일가견이 있음을 내세웠음은 물론이다.

남들이 보기에 뭐 하나 부러울 것 없는 그녀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똑 부러지는 성격의 그녀였지만 친정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던 그녀. 어머니는 언제나 잘 못된 부분, 때론 실패다 싶은 부분을 아프게 건드렸고, 너는 언제나 그 모양이고, 성격은 너무도 차갑고, 부모 마음도 모르고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고 등등의 차원 높은? 격려만 들려주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녀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어머니에게 그것 가지고 재냐는 투의 조롱만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딸이 자랑스럽지만, 자만할까봐 칭찬하지 않는다고 늘 말했다는 것이다. 자랑스럽다는 어머니의 말을 한 번도 믿지 않았던 Y는 자신이 실패한 사소한 것까지 평생 다 기억하며 비난하는 어머니를 벗어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서울행을 결단했고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당하게 살았건만 지방으로 내려와 육아에 전념하면서 결국 어머니로 인해 생긴 상처가 곪아터진 것이다.

그녀는 이야기한다. ‘내 인생은 이미 실패가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어머니라는 사람이 내게 했던 거의 모든 얘기들은 내 인생에 퍼부어진 저주에 불과하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Y가 결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는 수만 가지 이유를 만날 때마다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맞다. Y의 어머니 말대로 그녀는 실패가 두려운 실패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결코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예언은 제대로 적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Y는 실패의 연대기 마지막 장을 다시 쓰기로 결심했다. 극적인 반전을 일으켜보리라 작정한 것이다.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결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자책감, 이런 복잡한 이유에서 시작된 불안이 급기야 나만 없어지면 아이는 차라리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왜곡된 사고로까지 이어졌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받기로 결심한 것이다. 좋은 엄마는 아니더라도 일과 양육을 병행할 방법을 찾아보고, 자신의 정신 건강 회복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그래서 Y와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을 마주 앉아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오늘을 살았다.

Y의 어머니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사랑하는 딸에게 상처를 주었다. 인간의 본성이 저지르기 쉬운, 그러면서도 꽤나 치명적인 실수 중의 하나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이다. 아시다시피 과학적 사고란 자신의 옳음이 아니라 오류를 반증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사고방식이다. 부모들은 대체로 자신이 옳다고 자식들에게 순종을 강요한다. 그러나 위대한 부모는 자신이 옳지 않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식의 실패에 대한 예언을 하지 않는 부모일 것이다. 행여 그대가 자식의 실패에 대한 연대기를 지금도 쓰고 계신다면 Y의 사례를 한번쯤은 읽어보시길 권유하는 바이다.

 


김지애 소장
대구 마음과마음정신건강의학과 부속 WIN 학습 클리닉센터 소장이며, 실험 및 인지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장에서 심리 상담을 하고 있으며, 글 이해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는 인지심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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